혹시 집에 먼지 쌓인 영어 단어장, 한 권쯤은 있으신가요? abdicate는 ‘퇴위하다’, abduct는 ‘유괴하다’… 빼곡히 적힌 단어와 한국어 뜻, 그리고 형광펜 자국까지! 저도 학창 시절에 그런 책 한두 권쯤은 사봤던 것 같아요. 왠지 그 두꺼운 책을 다 외우면 영어가 술술 나올 것만 같았죠. 하지만 현실은…? 😅

많은 분들이 ‘영어 = 단어 싸움’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문법은 어느 정도 아는데, 단어를 몰라서 말이 안 나온다고요. 그래서 열심히 단어만 외우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셨죠? 과연 그럴까요? 오늘은 이 단어 암기의 허점과, 진짜 영어 실력을 키워주는 ‘다독’의 효과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려고 해요!

영어 단어

왜 단어 암기는 시간 낭비일까요?

우리가 그토록 매달렸던 단어 암기, 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는지 한번 살펴볼게요.

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암기 vs. 언어 사용

우리가 단어를 ‘abdicate – 퇴위하다’처럼 짝지어 외우는 건, 뇌의 ‘서술적 기억(declarative memory)’을 사용하는 거예요. 전화번호나 역사적 사건을 외우는 것과 비슷하죠. 그런데 이 서술적 기억의 가장 큰 특징이 뭔지 아세요? 바로 ‘잊어버린다’는 거예요!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에 따르면, 학습 후 한 달이면 80%를 잊어버린다고 해요. 물론 반복하면 장기 기억으로 간다고는 하지만, 그게 언어 사용으로 바로 이어질까요?

언어를 실제로 사용하는 건, 암기한 정보를 ‘꺼내 쓰는(recall)’ 과정과는 달라요. 우리가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뇌의 특정 영역, 특히 좌뇌의 베르니케 영역(Wernicke’s area)과 브로카 영역(Broca’s area)이 활발하게 움직인답니다. 1997년 <네이처>지에 실린 김정은 박사팀의 연구나 2001년 조지타운 대학 마이클 울만 교수의 연구를 보면, 모국어든 외국어든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은 이 특정 영역을 사용해요. 반면 외국어에 서툰 사람들은 뇌의 여러 부분을 사용하죠. 마치 길을 잘 아는 사람은 최단 경로로 가지만, 길치인 사람은 여기저기 헤매는 것과 같아요!

한국어와 영어는 1:1 번역기가 아니에요!

‘run’ 하면 ‘달리다’만 떠오르시나요? 하지만 “He’s running for president.”는 ‘그는 대통령으로 달리고 있다’가 아니라 ‘출마한다’는 뜻이고, “I’m running out of gas.”는 ‘기름이 떨어져 간다’는 의미죠. “My car runs on diesel.”은 ‘내 차는 디젤로 간다(작동한다)’이고요. 이렇게 영어 단어 하나에는 정말 다양한 뉘앙스와 쓰임새가 있어요. 한국어 단어의 약 13%가 동사인 반면, 영어는 약 6%에 불과하다는 점도 생각해 볼 문제예요. 영어 단어는 그 자체로 ‘모호함(ambiguity)’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한국어 단어와 1:1로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이걸 억지로 짝지어 외우는 건, 그야말로 ‘삽질(shoveling)’일 수 있어요!

시험 점수 ≠ 진짜 영어 실력

토익 900점이 넘는데 영어 인터뷰에서 한마디도 못 하는 경우, 주변에서 종종 보셨을 거예요. 단어를 잔뜩 외워서 시험 문제는 맞힐 수 있지만, 그게 실제 의사소통 능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죠. 영어로 생각하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심지어 논쟁까지 할 수 있는 ‘이중언어자(bilingual)’의 능력과는 거리가 멀어요.

그럼 영어, 어떻게 해야 실력이 늘까요? 해답은 바로 ‘다독’!

단어 암기가 허튼짓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영어를 공부해야 할까요?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다독(Extensive Reading)’을 외쳐요!

‘생각하는’ 독서가 핵심이에요!

영어는 단순히 단어를 많이 안다고 느는 게 아니에요. 영어를 영어로 ‘사고(추측, 상상, 추론, 비판, 감상)’하는 과정이 ‘무의식적’으로 ‘축적’되어 ‘스스로 깨달아(자각)’ ‘저절로’ 생기는 능력이랍니다. 단어 뜻을 한국어로 외우는 시간 대신, 그 단어가 문맥 속에서 어떤 의미로 쓰였을지 끊임없이 추론하는 시간이 쌓여야 진짜 어휘력이 돼요.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 스토리가 있는 책으로 시작하세요 (Narrative Reading): 처음에는 교과서나 뉴스 기사보다는 동화책이나 쉬운 소설처럼 이야기가 있는 책을 읽는 게 좋아요. 상상력을 자극하고 내용을 추측하는 재미가 있거든요.
  •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르세요: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가 5개 이상 나온다면 너무 어려운 책이에요. 조금 쉽거나(i-1), 딱 맞거나(i), 살짝 도전적인(i+1) 수준의 책 중에서 꾸준히 읽을 만한 것을 고르세요.
  • 사전 없이 읽어보세요 (Guessing & Ambiguity Tolerance):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바로 사전을 찾지 마세요! 앞뒤 문맥으로 뜻을 유추해보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그냥 넘어가세요! 이 ‘애매모호함을 견디는 능력(Ambiguity Tolerance)’이 정말 중요하답니다. 자꾸 추측하고 넘어가다 보면, 나중에 다른 글에서 그 단어를 다시 만났을 때 ‘아, 이런 뜻이었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영영사전을 참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영어로 된 설명을 읽으면서 또다시 추론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니까요.

아주 아주 많이 읽으세요 (Extensive Reading)!

네, 맞아요. 정말 많이 읽어야 해요! 스티븐 크라센 교수는 그의 저서 <읽기 혁명(The Power of Reading)>에서 “독서는 영어를 습득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 아니라 유일한 방법이다”라고까지 말했어요. (물론, 유일한 방법까지는 아닐 수 있지만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겠죠? ^^) 실제로 일본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영어 소설책을 1시간 읽을 때마다 토익 점수가 평균 0.62점씩 올랐다는 결과도 있답니다! 오카다 씨는 127시간을 읽고 40점이, 다나카 씨는 213시간을 읽고 무려 180점이나 토익 점수가 향상됐다고 해요. 3년간 매일 1시간씩 독서하면 이론적으로 토익 250점에서 950점까지도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오죠!

왜 하필 ‘책’이어야 할까요? 미드나 영화로는 부족한가요?

물론 미드나 영화도 듣기 능력 향상에는 큰 도움이 돼요! 자막 없이 많이 볼수록 좋죠. 하지만 어휘력과 문법을 탄탄하게 쌓는 데는 독서만 한 게 없어요. 왜냐하면 책을 읽을 때는 우리 뇌가 훨씬 더 ‘능동적으로 사고(Active Cognition)’하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해리포터 영화를 볼 때와 책을 읽을 때를 비교해볼까요? 영화는 감독과 작가가 모든 이미지를 만들어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돼요. 하지만 책을 읽을 때는? 내 머릿속에서 호그와트 성을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표정을 상상하고,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해야만 이야기가 진행돼요. 이 능동적인 사고 과정이 바로 언어 습득의 핵심이랍니다!

이제, 단어장 대신 재미있는 책을 펼쳐보세요!

단어 암기는 단기적인 시험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진짜 영어 실력을 키우는 데는 한계가 명확해요. 마치 지름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멀리 돌아가는 길일 수 있답니다. “하루 10분, 100일 완성” 같은 달콤한 말에 더는 속지 마세요. 언어 습득에는 왕도가 없어요. 꾸준히, 그리고 즐겁게 읽는 것만이 답이에요.

오늘부터라도 두꺼운 단어장 대신 재미있는 영어 동화책 한 권 펼쳐보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의 영어 여정에 다독의 마법이 함께하기를 응원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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