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로 소통하면서 한 번쯤은 느껴봤을 법한 미묘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 나눠볼까 해요. 특히 영어로 대화할 때, 상대방이 보여주는 ‘배려’가 때로는 더 편하기도, 때로는 더 불편하기도 했던 경험, 다들 있으신가요? 오늘은 바로 그 지점에 대한 제 생각과 경험을 좀 더 깊게 파고들어 보려고 합니다. ^^

문화적 배려

두 가지 배려, 두 가지 피로감

외국인, 특히 영어 원어민과 업무나 일상적인 대화를 하다 보면 크게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둘 다 우리를 ‘배려’해주는 건 맞는데, 그 방식이 달라서 느껴지는 감정과 에너지 소모가 전혀 다르더라고요.

“내가 널 위해 천천히 말해줄게” – 기술적 배려형

첫 번째 유형은 우리가 영어를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마치 선생님처럼 배려해주는 사람들이에요. 보통 미국이나 영국처럼 영어가 자신들의 언어이자 세계 공용어라는 자부심이 있는 나라의 사람들에게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죠.

“네가 내 언어를 배우느라 고생이 많구나. 내가 천천히, 그리고 쉬운 단어로만 골라서 말해줄게.”

이런 태도가 은연중에 느껴질 때가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살짝 자존심이 상하거나 ‘내가 어린애인가?’ 싶은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는 이쪽이 훨씬 편해요! 또박또박 말해주니 귀에 쏙쏙 들어오고, 어려운 단어를 피해주니 대화의 내용을 놓칠 확률이 현저히 줄어들죠.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이라면 이런 ‘기술적 배려’가 정말 고마울 때가 많았어요.

“우린 친구잖아!” – 순수한 친근함형

반면, 두 번째 유형은 정말 순수하게 친절한 사람들이에요. 제가 겪었던 몇몇 캐나다인들이 그랬는데요, 이 사람들에게는 어떤 문화적 우월감 같은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저를 동등한 친구로 대하며 끝없이 즐겁게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마음은 훨씬 편안하고 따뜻했어요. 하지만… 정말 뇌에 과부하가 걸리는 느낌이 뭔지 알게 됐죠! 😅 그들은 저를 배려해서 속도를 늦추거나 단어를 고르지 않아요. 그냥 옆집 친구에게 말하듯, 그들의 평소 속도와 억양, 슬랭까지 섞어가며 신나게 이야기한답니다. 알아듣고 못 알아듣고의 문제를 넘어, 그 대화의 속도와 양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경험이었어요. 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알아주면 좋으련만, 이 ‘맑은 눈의 광인’ 같은 친구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어떤 쪽이 더 나은 걸까요?

정말 어려운 질문이에요. 마음의 상처는 좀 받더라도 기술적으로 편안한 대화가 나을까요, 아니면 정신적으로는 녹초가 되더라도 인간적인 유대감을 느끼는 대화가 더 나을까요? 상황에 따라, 그리고 그날의 제 컨디션에 따라 답은 계속 바뀌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쪽을 선호하시나요?!

언어 장벽 너머의 ‘문화적 코드’ 읽기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개인의 성향 문제를 넘어, 더 깊은 문화적 배경과 관련이 있답니다. 언어학이나 문화인류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흥미로운 개념들을 제시해요.

고맥락(High-Context) vs. 저맥락(Low-Context) 문화의 충돌

한국이나 일본 같은 동아시아 국가는 대표적인 ‘고맥락(High-Context)’ 문화권에 속합니다. 말하는 내용 그 자체보다도 말하는 상황, 어조, 비언어적 표현, 그리고 우리 사이에 공유된 ‘눈치’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문화죠.

반면, 미국, 캐나다, 독일 등 서구권 국가는 대부분 ‘저맥락(Low-Context)’ 문화권입니다. 메시지는 최대한 명확하고 직접적으로 전달되어야 오해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 관점에서 보면, ‘기술적 배려형’은 저맥락 문화권 사람이 고맥락 문화권 출신의 비원어민을 위해 메시지를 ‘더욱더’ 명확하게 만들어주는 행위라고 볼 수 있어요. 반면 ‘순수한 친근함형’은 그냥 자신의 디폴트 값인 저맥락 방식으로 편하게 소통하는 것이고요. 우리는 언어를 해석하면서 동시에 이 문화적 코드의 차이까지 처리해야 하니, 인지적 부하(Cognitive Load)가 2배, 3배로 늘어나는 셈입니다.

‘코드 스위칭’의 엄청난 에너지 소모

우리가 외국어로 대화할 때, 사실은 언어만 바꾸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코드 스위칭(Code-Switching)’이라는 걸 하고 있답니다. 한국어로 말할 때의 사고방식과 문화적 태도에서 영어로 말할 때의 그것으로 전환하는 과정이죠. 이 과정은 뇌의 실행 기능(Executive Functions)에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한다고 해요. 한 연구에 따르면, 제2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모국어를 사용할 때보다 문제 해결에 평균 15~20%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대화가 끝나고 피곤한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어요.

배려의 역설: 그들의 배려가 진짜 나를 위한 걸까?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볼 문제도 있습니다. 그들의 ‘배려’가 정말 순수하게 나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대화를 더 원활하게 이끌어가고 싶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일까 하는 점이죠. 물론 대부분은 선의에서 비롯되겠지만, 때로는 우리의 성장을 기다려주기보다 상황을 빨리 끝내려는 조급함이 섞인 ‘배려’도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만약 우리가 ‘주류’였다면?

가끔 이런 상상을 해봐요. 만약 한국어가 지금의 영어처럼 세계 공용어였다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지만, 한편으로는 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한국어가 공용어인 세상, 상상해보셨나요?

전 세계 사람들이 K-팝과 드라마를 넘어, 비즈니스와 학문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세상을 상상해보세요! 외국인들이 ‘은/는/이/가’ 조사의 미묘한 차이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고, 복잡한 존댓말 체계 앞에서 좌절하는 모습을 보게 되겠죠. “안녕하세요”와 “안녕” 사이의 사회적 거리를 이해하지 못해 쩔쩔매는 그들을 보며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나는 어떤 태도를 보일까?

과연 저는 외국인에게 어떤 한국인이 될까요? 그들이 서툰 한국어를 쓰는 모습을 보며 답답해할까요? 아니면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설명해주는 ‘기술적 배려형’이 될까요? 혹은 격의 없이 친구처럼 대하며 저의 평소 말투와 속도를 그대로 사용하는 ‘순수한 친근함형’이 될까요? 아마도 ‘우리말을 써주다니, 고맙다’는 지금의 감정과는 사뭇 다른, 익숙하고 당연한 감정이 자리 잡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생각 끝에 내리는 결론은 항상 같아요. 다른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정말 대단하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다른 문화권의 언어를 배우며 소통하려 애쓰는 세상의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해요! 여러분의 경험은 어떠셨는지 댓글로 함께 이야기 나누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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