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키우시는 부모님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우리 아이, 공부 좀 잘했으면…” 하는 마음 가져보셨을 거예요. 저 역시 대안학교에서 중고등 과정 아이들을 가르치며 이런 고민을 매일같이 마주하고 있답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공부’라는 것을 어떻게 안내해야 할지, 그 균형점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하고 있어요. 오늘은 공부 강요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만이 답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깊이 나눠볼까 합니다.

자녀교육

공부, 왜 억지로 시키면 안 될까요?

우리 학교는 유치, 초등, 중고등 과정이 통합된, 조금은 특별한 대안학교예요. 약 20명 남짓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배우고 있는데요. 이곳에 오는 아이들 중 일반 학교에서 전학 온 경우를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강요가 만든 그림자, ‘하기 싫은 공부’

대부분의 아이들이 수학과 영어 학원을 다닌 경험이 있고, 신기하게도 그 두 과목을 유독 싫어한다는 점이었어요. 이유를 물어보면 대답은 비슷해요.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재미없어요.” 억지로 하는 공부는 결국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그 과정에서 생긴 거부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마치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먹고 체한 뒤에는 그 음식 냄새만 맡아도 싫어지는 것처럼 말이죠.

A학생 이야기: 시키는 대로 했지만, 마음은 텅 비었어요.

A라는 학생이 있었어요. 부모님 말씀을 정말 잘 듣는 아이였죠. 부모님은 A에게 일주일에 책 한 권 읽기, 영어, 일본어, 한자 공부까지 시키셨어요. A는 정말 열심히 해서 일본어와 한자 자격증도 딸 만큼 실력이 좋았죠. 그런데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더 이상 부모님의 강요를 견디기 힘들어했고, 마찰도 잦아졌죠. A는 공부가 재미없다고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시키는 건 꼬박꼬박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어요. 스스로 무언가를 더 찾아 하거나, 궁금해하는 일은 거의 없었죠. 공부는 항상 마감 시간에 닥쳐서 했고, 누가 시키지 않으면 뭘 해야 할지 몰라 했어요.

학습된 무기력: 불안하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들

A는 점점 무기력해졌어요. 그렇다고 공부를 아예 놓지도 못했어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죠. “공부해야 하는데…” 마음은 먹지만, 며칠 못 가 제자리걸음이었어요. 재미없는 공부를 억지로 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을 거예요.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아이들은 ‘나는 해도 안 돼’, ‘나는 원래 공부를 못해’와 같은 부정적인 자기 인식을 갖게 될 위험이 커요. 실제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고 부르는데, 반복된 실패나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노출된 개인이 실제로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포자기하는 상태를 의미해요. A학생의 경우, 외부의 강요에 의해 움직였기 때문에 내적 동기가 부족했고, 이는 곧 학습된 무기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초기 증상으로 볼 수 있어요.

그렇다면, ‘방치’가 정답일까요?

“그럼 강요가 문제라면, 그냥 아이가 스스로 할 때까지 내버려 두면 되는 걸까요?” 이렇게 질문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이 질문에 대한 힌트를 B학생의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었어요.

B학생 이야기: 싫어하는 영어, 좋아하는 일본어

B학생 역시 수학과 영어 압박에 힘들어했어요. 특히 영어를 정말 싫어했죠. 왜 해야 하는지 의미를 찾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 일본 애니메이션을 정말 좋아했어요!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스스로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더라고요! 지금은 듣고 말하는 게 일상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어요. 영어는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실력은 그에 미치지 못했죠. 영어 과제도 잘 안 해오고요. 그래서 B와 상담 끝에 “정말 하기 싫으면 영어 수업 듣지 않아도 괜찮아. 그 시간에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라고 이야기해 주었어요. 처음에는 불안해했지만, 결국 영어 수업에서 빠지기로 했죠.

뜻밖의 변화: 스스로 영어책을 펼친 아이

몇 달이 지났을까요? 우리 학교에는 ‘자기성장학습’이라고 해서 아이들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수업이 있어요. 그런데 어느 날, B학생이 그 시간에 영어 단어 책을 보고 있는 거예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말이죠. 물론 당장 영어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 건 아니었지만, 중요한 건 ‘스스로’ 시작했다는 점이었어요. 억지로 할 때는 그렇게 싫어하던 영어를, 아무런 압박이 없어지니 오히려 궁금증이 생겼던 걸까요? 정말 놀랍지 않나요?! 이처럼 내적 동기가 발현될 때, 학습 효과는 극대화될 수 있어요. Deci와 Ryan의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 충족될 때 개인은 내적 동기를 경험하며, 이는 지속적인 학습과 성과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해요. B학생은 영어 공부에 대한 자율성을 부여받자, 비록 작은 시작이었지만 스스로 학습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죠.

단순한 방치는 아니에요!

하지만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B학생의 경우가 ‘단순한 방치’의 결과는 아니라는 거예요. 영어 수업을 듣지 않도록 한 것은 맞지만, 그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다른 공부를 하도록 ‘권유’하고 ‘환경’을 만들어주었죠. 즉, 강요는 없앴지만, 배움의 끈을 놓지 않도록 지지하는 역할은 계속되었던 거예요.

강요 없는 환경에서 피어나는 아이들: C학생 이야기

그렇다면 강요 없이, 아이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 공부하는 이상적인 모습은 어떨까요? 최근 우리 학교를 졸업한 C학생의 이야기가 좋은 예가 될 것 같아요.

즐거움이 이끄는 배움

C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우리 학교에 다녔어요. 처음에는 공부에 큰 관심이 없었죠.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수학과 영어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어요. 사실 이 친구는 수학, 영어뿐만 아니라 학교의 거의 모든 수업을 좋아했어요. 우리 학교는 1인 1악기 이상을 배우며 밴드 수업, 앙상블 수업도 하고요, 일주일에 한 번씩 직접 요리해서 나눠 먹는 요리 수업, 배드민턴, 인문학 수업 등 정말 다양한 활동을 하거든요. C는 이 모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자연스럽게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였어요. 바이올린과 피아노로 앙상블 합주를 하고, 기타와 베이스도 다룰 줄 알게 되었죠. 춤도 좋아해서 친구들과 몇 년간 춤을 추기도 했고요.

‘왜?’를 아는 공부의 힘

C는 고3 졸업할 때까지 여전히 모든 과목을 좋아했어요. 신기하게도 “공부하라”는 소리를 한 번도 듣지 않았는데, 스스로 찾아서 공부했죠. 아마도 C에게 공부는 ‘해야만 하는 숙제’가 아니라 ‘알아가는 즐거움’이었을 거예요. 다양한 경험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왜 배우는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갔기 때문이 아닐까요? C학생의 사례는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의 다중지능이론을 떠올리게 해요. 가드너는 인간에게 언어, 논리수학, 공간, 신체운동, 음악, 대인관계, 자기이해, 자연친화 등 다양한 지능이 존재한다고 보았죠. C학생은 학교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여러 지능을 발견하고 계발할 기회를 얻었고, 이것이 학업 성취를 포함한 전반적인 성장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여요.

어른도 마찬가지, 하고 싶은 공부는 재미있어요!

저 역시 학창 시절, 공부를 꽤 잘하는 편이었지만 솔직히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걸 즐기고 있답니다. 왜냐고요? 이제는 아무도 저에게 특정 공부를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다 보니 배우는 재미가 절로 생겼고, 심지어 예전에 억지로 했던 영어와 수학도 다시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과목들이 가진 진짜 매력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있어요.

강요와 방치 사이, 그 해답을 찾아서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공부는 강요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 보여요. 억지로 시키면 단기적으로는 성과가 나올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부작용이 따르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본래 배우고 성장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마찬가지랍니다.

기다림의 미학: 씨앗을 심고 물을 주는 마음으로

“그럼 아이가 스스로 할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나요?” 이 질문이 다시 떠오르실 텐데요. 저는 단언컨대, 강요보다는 기다리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공부가 ‘싫은 것’이 되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단순한 방치가 답은 아니에요. 아이의 마음에 배움의 씨앗을 심고, 그 씨앗이 스스로 싹을 틔울 수 있도록 햇볕과 물을 주는 정성이 필요하죠.

다음 이야기 예고: 구체적인 방법은?

그렇다면 강요와 방치 사이, 그 ‘어딘가’에 있다는 해답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아이가 스스로 배움의 즐거움을 찾도록 돕는 환경은 어떻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에세이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어 보도록 할게요. ^^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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